영화 ‘같은’ 뮤직비디오 3

출처: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세기말과 새천년이 시작되는 즈음, 한국에서는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가 한창 인기였다. 러닝타임이 6, 7분을 거뜬히 넘기고, 음악과 노래가 안 나오는 구간이 앞 뒤 중간 여기저기에 있어서 가끔은 이게 영상이 음악을 위한 건지, 음악이 영상을 위한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보는 사람이 영상을 보다가 언제든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있는 환경이 된 이후로는 큰 스케일로 길게 뮤직비디오를 뽑는 경향은 이제 자취를 감췄다. 어찌 보면 뮤직비디오가 점차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받으면서 영화나 드라마의 문법을 취하는 시도가 무의미해진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되레 요즘 들어 뮤직비디오가 ‘극’스러움을 담아내는 순간들이 종종 보이면 흥미롭게 느껴지곤 한다. 지금부터 소개할 세 편의 뮤직비디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화와 호흡한 케이스들이다. 음악만 들었던 사람이라면 연관된 영화에 새롭게 관심이 생길 것이며, 영화만 봤던 사람이라면 작품이 자신에게 주었던 감흥을 되새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새소년 – 눈 X 윤희에게

만약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로만 최근의 김희애를 상기했다면 이 영화로 다른 의미의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김희애는 <윤희에게>에서 내내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새봄(김소혜 분)의 엄마, 남편이었던 인호(유재명 분)의 전 부인, 오래전 사랑했던 쥰(나카무라 유코 분)의 옛 애인, 그리고 여러 수식어와 별개로 오롯이 혼자 일어서려는 윤희를 연기한다. 새봄을 촉매로 윤희는 살고 있던 지방 변두리를 벗어나고, 눈이 많이 오는 홋카이도를 찾고, 다시 돌아와 서울로 나아간다. 이는 잘못이 없음에도 제 뜻대로 살지 못했던 어떤 존재가 스스로를 옭아매던 삶의 굴레를 빠져나와, 애써 감춰왔던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더욱 충만한 삶을 원하게 되는 자아실현의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존재를 퀴어라는 정체성을 가진 윤희로 삼고, 주된 무대를 마음 한켠으로 밀어 두어도 다시 생기는 그리움처럼 끝없이 눈이 쌓이는 <러브 레터>의 배경인 오타루로 잡은 것은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더 강하게 부각한다. 덕분에 <윤희에게>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흥행과 별개로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2년 넘는 공백기를 거쳐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돌아온 새소년의 ‘눈’ 뮤직비디오는 이런 <윤희에게>와의 정식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탄생했다. 새소년 특유의 로파이한 사운드는 영화 속 삶과 살을 에는 듯한 상처와 추위에 맞닿아 있는 것만 같고, 용기가 없어 차마 부칠 수 없었던 어떤 편지 같은 가사는 그에서 오는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자이언티 – 눈 X 소공녀

‘N포세대’라는 말도 어느새 2010년대 중반 청년 세대를 상징하는 언어가 된 것만 같다. 2018년 개봉한 <소공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잊힌 그 말을 발칙하게 반영하고 또 뒤집는 영화다. 영화는 집만 포기했을 뿐, 나머지 나의 것을 놓지 않으려 하는 미소(이솜 분)의 서울유랑기, 그런 미소와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의 짠 내 나는 연애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이유 주연의 <페르소나> 중 <키스가 죄>를 만든 전고운 감독은 2015년 인상된 담뱃값에서 <소공녀>에 대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장면 중에서도 미소가 실내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특히나 영화의 메시지에 묘한 낭만을 가득 더한다. 물론, 옛 밴드 멤버들이 장례식 때나 겨우 모이고, 미소는 여전히 집 없이 살고, 한솔은 정말로 중동으로 떠나버렸으니 어떤 대단한 역전의 결말은 없다. 대선배 이문세가 함께한 자이언티의 ‘눈’ 뮤직비디오는 그런 <소공녀>의 잔잔한 서글픔을 이어나간다. 이 뮤직비디오는 전고운 감독의 남편이자 이솜이 출연한 <범죄의 여왕>을 연출한 이요섭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소공녀>를 개봉 전 미리 보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당시 제안받은 ‘눈’ 뮤직비디오를 영화의 시퀄 격으로 만들었다. 피아니스트 윤석철이 더한 재지함, 자이언티와 이문세가 자아내는 포근함 속에서 중동에서 돌아와 전 재산을 털어 호텔 스위트 룸을 빌리고, 혼자서 춤을 추는 한솔. <소공녀>를 봤다면 아마 그의 춤에서 과장 조금 보태 <마더>에서 김혜자가 춘 마지막 춤에 담긴 비애를 느낄 것이다.


 

재규어중사 – 너만의 천사가 되어 X 8월의 크리스마스

재규어중사의 ‘너만의 천사가 되어’는 사실 유튜브 안에서 매우 흔한 사례일 수도 있다. 노래에 어울리는 영화의 장면을 적절히 컷 편집하여 붙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특이점이 있다면 재규어중사가 자신이 추구하는 무드의 곡을 색소포니스트 제이슨 리의 색소폰 연주를 더해 커버하고, 그 무드를 공유하는 영화에 결합했다는 것이다. 재규어중사는 90년대 알앤비 특유의 아련한 감성을 지향하는데, 그에 걸맞게 3인조 남자 그룹 보이스의 ‘너만의 천사가 되어’도 전형적인 90년대식 컨템포러리 알앤비 넘버에 가깝다. 우연인지,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활용된 영화는 ‘너만의 천사가 되어’가 발매된 1998년 개봉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최근 <덕혜옹주>,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통해 역사에 천착하기 전 꽤 오랫동안 정통 멜로를 추구하던 허진호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 영화계에 제대로 이름을 남긴 국산 멜로 명작이다. 이런 배경이 있는 노래와 영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대단히 90년대스러운 코드로 확실하게 이어져 있다. 번외로 바비 브라운으로 대표되는 알앤비 보이 그룹 뉴 에디션의 ‘Love In Love’ 커버에 이정재, 전지현 주연의 <시월애>를 붙인 영상도 있으니 차례대로 감상해보자.

CREDIT

에디터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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