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과 박정민이 지나온 시간

 

<파수꾼>. 어느덧 9년 전에 나온 이 영화는 윤성현 감독의 문제적 첫 장편 영화였다. 윤성현이라고 하면 생소한가?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2010년대의 충무로를 멋지게 휘저은 배우 박정민과 이제훈이 첫 번째 임팩트를 남긴 순간이라고 설명하면 어떨까. 이제는 어엿한 스타 배우가 된 그들이 <파수꾼>에서 연기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찬란하기보다는 처절해서 남달랐다. 그 둘은 물론, 충무로의 또 다른 스타들인 안재홍, 최우식까지 가세한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 <사냥의 시간>. 강산도 바뀐다는 시간 동안 그들은 성과가 어떻든 간에 배우로서 성실히 움직였다.

 

출처: <사냥의 시간> 스틸컷

 

공통점이 있기에 왠지 모르게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만 같은 새로운 작품을 만나기 전에 두 남자의 행로를 되짚어볼 필요를 느꼈다. 박정민과 이제훈이 지나온 지난 몇 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아, 잠시 언급한, 지난해 최고의 찬사를 받은 <기생충>의 최우식과 지난 1월 개봉한 <해치지않아>의 안재홍 이야기는 없으니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다.


 

2011 - 고지전

영화감독 장훈은 김기덕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후로 한국 현대사를 캐릭터 개인의 시점에서 풀어내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 결실로 송강호가 리드하는 <택시운전사>를 통해 관객 1,200만 명을 동원했다. 그전에도 남북을 소재로 다룬 <의형제>와 <고지전>으로 각각 흥행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중 이제훈이 출연한 <고지전>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슷한 결로 전쟁의 참상 속에서 변해가는 인간성을 이야기한다. 내용의 메인은 기본적으로 갈등하는 친구 사이의 은표(신하균 분)와 수혁(고수 분)이다. 그러나 정작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건 이제훈이 연기하는 일영이다. 그는 두 주연 사이를 비집고 PTSD를 겪는 군인이라는 상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냈다.


 

2012 - 건축학개론

지금까지 배우 이제훈의 커리어에는 두 번의 피크타임이 있었다. 한 번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건축학개론>, 한 번은 <미생>의 김원석 감독, <킹덤>의 김은희 작가, 조진웅과 김혜수까지 동원된 tvN 드라마 <시그널>이다. 그중 <건축학개론>은 이제훈이 상업적으로 떠오른 첫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90년대를 대학생으로 살았던 이들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을 기억을 아픈 추억으로 촉촉하게 포장한다. 이제훈이 연기하는 주인공 승민은 그 과정에서 왜곡을 주도해 첫사랑을 신화화한다. 그래서 개봉 당시와 달리 현재는 이를 두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혹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라고 말하는 이가 늘어난 편이다.


 

2013 - 분노의 윤리학, 파파로티

이제훈은 배우로서 작품의 선택폭이 매우 넓은 편이다. 역사, 전쟁, 멜로, 드라마, 판타지 스릴러까지, 어느 하나 같은 결의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2013년 이만치 서로 다른 작품이 한 해에 개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인간의 모순적인 면을 풀어낸 블랙코미디 <분노의 윤리학>이고, 하나는 건달 조직에 속해 있던 남자가 천재 테너로 거듭나는 음악 영화 <파파로티>다. 배우 개인에게는 아쉽게도 두 작품 모두 흥행 측면에서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었다(<파파로티>는 손익분기점을 약간 넘기긴 했다). 그와 별개로 <분노의 윤리학>이 보여주는 B급 코드의 실험성은 꽤나 흥미로웠고, <파파로티>가 가져가는 한국식 조폭+성장+코미디는 진저리날 만큼 식상했다.


 

2014 - 들개

박정민, 이제훈과 같은 나이대에 비슷하지만 다르게 떠오른 배우로 변요한이 있다. 변요한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생>의 한석율로 브라운관에서 먼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그가 흥행과 별개로 좋은 인상을 남긴 영화가 박정민과 함께한 <들개>다. <들개>는 사회 속에서 일그러진 청년의 자화상을 파격적으로 그리는 영화다. 정구(변요한 분)와 효민(박정민 분)이 형성하는 주저하는 자와 부추기는 자의 관계는 전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제 폭탄이라는 묘하게 적절한 소재를 두고서 벌이는 긴장감은 생각보다 크다. 특히나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받는 효민을 연기한 박정민은 영화 제목처럼 들개 그 자체로 열연한다.


 

2016 - 동주(박정민),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제훈)

두 배우는 공교롭게도 연도를 거의 번갈아 가면서 출연한 작품을 내놨다. 유일하게 겹친 구간은 2016년으로, 박정민은 시대극을, 이제훈은 장르물을 소화했다. 사실 <동주>는 배역상으로 윤동주, 그리고 윤동주를 연기한 강하늘의 영화다. 그러나 동적인 연기력을 가진 박정민이 연기한 윤동주의 사촌 송몽규라는 존재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지닌 소박한 진심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반면,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속 이제훈은 만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연출을 부드럽고 이지적인 이미지로 완충해서 소화한다. 영화 자체는 <씬 시티>가 과하게 연상되는 도입, 사실은 별거 아닌(?) 스토리 때문에 독창성, 긴장감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편이다.


 

2017 - 박열, 아이 캔 스피크

박정민에게 <동주>가 있다면, 이제훈에게는 <박열>과 <아이 캔 스피크>가 있다. 두 작품은 영화적으로 약간씩 비틀대다가도 우직한 뚝심과 섬세한 시선으로 준수한 흐름을 지켜낸다. 공통점은 산업이 이제훈을 메인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내용 면에서는 동등하거나 더 많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최희서가 연기하는 가네코 후미코와 나문희가 연기하는 나옥분에게 충분한 스포트라이트가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제훈은 여성 배우가 눈에 띄는 영화가 많지 않은 데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사고가 영향을 미친 건지, <박열>과 <아이 캔 스피크>는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한국 영화 중 가장 결이 다른 영화가 되었다.


 

2018 - 그것만이 내 세상, 변산

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박정민의 노력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 진태, 상경해서 랩으로 성공하려는 열망을 가진 학수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 피아노와 랩을 연습했다지만, 그가 던져진 판이 아무리 봐도 영 엉성하기 때문이다. 소재만 다를 뿐이지, 죽어가는 못난 부모님과 이에 질세라 못된 자식이라는 캐릭터 관계를 기능적으로 사용해 신파를 강요한다. 이성적, 감성적 개연성을 붙잡지 못하고 질질 끌고 간 끝에 보여주는 결말부의 무대 장면들은 그 점에서 어떤 감정의 동요도 불러오지 못한다. 꼭 어떤 특정한 스킬을 맹연습하지 않아도 좋으니 박정민이 앞으로 더 좋은 시나리오의 영화를 골랐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긴다.


 

2019 - 사바하, 타짜: 원 아이드 잭, 시동

박정민에게 2018년과 2019년은 다작의 해였다. <염력>까지 포함하면 2년간 총 여섯 작품, 4개월에 한 번씩 출연작이 나왔다. 그러나 흥행과 작품성 측면에서는 쉴 새 없이 삐거덕대며 발을 못 맞추다 못해 속절없이 무릎을 꿇었다. <검은 사제들>에 이어 뚝심 있게 오컬트만을 파는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는 높은 완성도와 참신함에 비해 붐을 일으키지 못했다. 반면, <백두산>이라는 거대 블록버스터와 경쟁하면서도 330만이라는 손익분기점 대비 좋은 성과를 거둔 <시동>은 코믹도 신파도 뭣도 아닌 어중간한 청춘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설의 시리즈를 잇는 <타짜: 원 아이드 잭>은 다른 의미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개연성으로 명절 특수를 안고도 완전히 참패했다.

CREDIT

에디터 김정원

​하늘 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다지만, 양심만 있으면 재밌는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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