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는 집시였고 콜라보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제 무언가가 나와도 오늘 내가 사는 곳에서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만큼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같은 것에 열광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것을 추구하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더 빛나는 법. 범위를 2010년대 한국 알앤비로 한정 지었을 때, 그 지점에서 가장 빛나는 팀은 단연 히피는 집시였다이다. 프로듀서 제이플로우, 보컬 셉으로 구성된 이 팀은 2016년 EP [섬]을 시작으로 매년 훌륭한 앨범으로 얼터너티브 알앤비 특유의 공간감과 동양의 것으로 여겨지는 여백의 미를 조화롭게 매칭시켜왔다. 지난 18일에는 새로운 레이블 굿투미츄에 둥지를 틀고, 데뷔 4년 차만에 무려 정규 4집 앨범 [불]을 발표했다. 그런 그들의 독보적인 지난 기록을 여성 솔로 아티스트들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되짚어 봤다.


 

1st Album 나무 – ‘연리지’ (with 소마)

히피는 집시였다를 표현하는 가장 명쾌한 수식어로는 아시안 얼터너티브(Asian Alternative)가 있다. 그 첫 시작이 데뷔 정규 앨범 [나무]다. 히피는 집시였다는 늘 앨범 제목에 거시적인 의미를 담아왔다. 그중에서 [나무]에서는 많은 조건이 충족해야 살아갈 수 있는 나무를 인간에 대한 비유로 활용했다. 'With Me', '밤안개', '한국화' 등 여러 수록곡은 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혹은 '어여가자'처럼 직, 간접적으로 한국적인 표현이 주된 곡도 있다. 늘 그렇지만, 서로 다른 색깔의 'Cold', '지네', '한국화', '점'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었다. 팀은 이 앨범으로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부문을 거머쥐었다.

 

 

'연리지'는 앨범 안에서 가장 재즈틱한 트랙이다. 모두 히피는 집시였다와 깊은 연이 있는 김오키, 소마 덕분이다. 색소포니스트 김오키는 [나무]에서 '지네'에 이어 '연리지'에서도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성공시킨 프리 연주를 보탰다. 소마는 정통 재즈 보컬은 아니더라도 재지한 스타일의 보컬을 연출하며 스캣까지 선보인다. 주제적으로는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펼치다가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사실상 마지막 트랙 '회색'으로 건너가기 전, 결합에 대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하는 것만 같다. 여담으로, 소마는 올해 자신의 첫 정규 앨범 [SEIREN]을 훌륭한 완성도로 냈고, 제이플로우는 그런 그에게 'She’s Dream', '꽃가루' 같은 좋은 트랙을 선사한 바 있다.


 

2nd Album 언어 – ‘불꽃놀이’ (with 씨피카)

앞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히피는 집시였다의 작업량과 속도는 엄청나게 왕성하고 빠르다. 보통 아티스트들이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며 힘겨워한다는 커리어의 두 번째 계단을 겨우 열 달 만에 성공적으로 밟은 것만 봐도 그렇다. [언어]는 제이플로우가 적은 앨범 소개 글 격의 수상록에서도 알 수 있듯 세상 만물의 모습과 움직임을 일종의 언어로 인식하고 접근한 앨범이다. 그래서 ‘추 (秋)’, ‘비’, ‘침대’ 같이 자연적인 현상이나 물성이 있는 물건이 제목인 곡이 눈에 띈다. 음악은 어떻게 보면 전작보다 조금 더 팝적으로 변모했으며, 보컬 셉만의 진득하고 서정적인 가사는 여전히 빛이 난다. 아웃트로 ‘우리에겐’에서는 한 명의 인간이자 음악인으로서의 강한 의지도 느껴진다.

 

 

씨피카는 이 리스트에서 소개하는 컬래버레이션 아티스트 중 장르적으로 가장 동떨어진 편이다. 기본적으로 전자음악 계열에 가까우며, 그의 커리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티스트 무드 슐라, 그레이(GRAYE), 테림, 제이비토만 봐도 그 결이 시쳇말로(?) 힙하다. 지금까지 두 장의 EP [INTELLIGENTSIA], [PRISM]를 냈고, 저스디스 & 팔로알토, 크러쉬의 음악에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요즘 장르 경계가 워낙 모호하고, 또 히피는 집시였다가 일반적인 알앤비를 구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불꽃놀이’ 같은 노래가 탄생할 수 있었다. ‘불꽃놀이’는 말 그대로 밤하늘을 낭만적으로 수놓는 불꽃들이 터지는 풍경을 은은한 기타와 드럼 소리로 묘사한 곡이다. 그 위로 씨피카만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마지막 남은 한 점을 유유히 찍는다.


 

3rd Album 빈손 – ‘사이’ (with 소금)

히피는 집시였다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하는 편은 아니다. 여러 번 듣고, 노랫말을 곱씹어 생각해보았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과다. 그래서 곡 제목, 가사 한 마디 한 마디, 사운드의 디자인 등 여러 가지를 조합해 맥락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 그들의 음악을 더 풍성하게 즐길 방법이다. 그 와중에도 가장 난해하다면 난해한 앨범이 [빈손]이다. [언어]로부터 겨우 반년여 만에 발표된 이 앨범은 가사 자체도 별로 없고, 있는 가사들은 또 대단히 의미를 응축하고 있다. 두 장의 앨범으로 쌓아 올린 흐름과 의미를 해체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빈손’이라는 앨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로 대변되는 동양 철학 일부를 소리적인 예술로 경험할 수 있다.

 

 

소금은 최근 MBN에서 방영한 AOMG의 오디션 프로그램 <사인히어>에서 우승을 하며 레이블의 새 멤버가 됐다. 그러나 사실은 경연을 진행하면서 히피는 집시였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두 팀은 [빈손]에 수록된 콜라보 트랙 ‘사이’를 2라운드에서 선보였으나, 셉의 튠이 잘못 걸려 있는 탓에 온전한 무대를 선보이지 못했다. 자연히 동반 탈락했고, 이후 소금만 특별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아 부활할 수 있었다. 어쨌든 ‘사이’는 앨범의 정중앙에서 가장 고조되고 갈등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곡이다. 점차 특이해지는 튠도 튠이지만, 앞부분에서 소금만이 선보일 수 있는 멈블 싱잉(?)이 듣는 이를 압도한다.


 

4th Album 불 – ‘그대로’ (with 후디)

올해도 어김없이 발매된 히피는 집시였다의 앨범 [불]은 역시나 작품명부터 ‘히피는 집시였다스럽다’라고 할 수 있는 함축적인 매력을 담고 있다. 단출한 개개 곡과 앨범 제목, 그것을 풀어내는 서정적인 가사와 몽환적인 사운드까지, 모든 것이 그렇다. 늘 궁금증을 자아내는 앨범 소개 글에는 제이플로우가 직접 쓴 불을 피우는 과정이 자세하게 쓰여 있는데, 듣다 보면 왜 앨범의 중심 키워드가 불인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열심히 손을 비벼야 하지만, 꺼지고 나면 결국 재만 남는다. 두 멤버는 그 모든 과정이 곧 관계이고, 사랑이며, 삶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불]의 세 번째 트랙 ‘그대로’에는 AOMG의 히로인 후디가 참여했다. 먼저 등장한 소마, 씨피카, 소금은 음악이나 보컬 스타일이 스탠다드한 편이 아니었는데, 그에 비하면 후디는 반대쪽에 있는 편이다. 그는 AOMG의 멤버가 되기 전부터 이미 팝한 알앤비 음악을 추구했다. 이는 하이파이한 사운드 아래 EP [On And On], ‘HANGANG’, 정규 앨범 [Departure] 같은 인상적인 작품으로 꽃 피웠다. 그렇기에 히피는 집시였다와는 조금 이질적일 수도 있는데, 분명한 파트 구분 때문인지 의외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편이다. 쉽게 생각하면 2집 [언어]에 수록된 침대에서 지바노프와 보여준 콤비네이션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CREDIT

에디터 김정원

하늘 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다지만, 양심만 있으면 재밌는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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