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덕질을 한다고?

출처: 공식 인스타그램 (@giantpengsoo)

 

그 많던 덕후들 다 여기 있었네

덕질의 시대다. 돌덕(아이돌 덕후), 연뮤덕(연극, 뮤지컬 덕후), 애니덕(애니메이션 덕후), 겜덕(게임 덕후), 밀덕(밀리터리 덕후), 코덕(코스메틱 덕후) 등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이 판을 친다. 하지만 최애는 바뀌는 게 아니라 쌓이는 거라고 했던가. 덕질의 장르는 더 넓어지고, 취향은 적립되며, 덕후는 또 다른 모습으로 탄생한다. 그래서인지 어째 생각지도 못했던 장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최근 가장 핫한 EBS 연습생 자이언트 펭귄 펭수처럼 말이다.

 

 

고독한 펭수방, 펭수 덕질 계정, 펭수 입덕 영상, 펭수 이모티콘, 펭수 팬미팅까지, 캐릭터일 뿐인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냐 물으면 펭수 덕후로서 이렇게 응답하겠다. 펭수는 펭수이기 때문에! ‘펭수’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렸다. EBS 사장의 이름인 ‘김명중’을 외치는 모습이나 EBS 연습생이면서 다른 방송국으로 이직하겠다는 모습이 점잖고 근엄한 것에 지친 이들이 활발하게 덕질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고나 할까.

이렇게 간만에 신선한 덕질을 하다 보니 무언가에 흠뻑 빠져버려 덕질을 하고 있는 덕후들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장르 관계없이 여기저기 둘러보다 발견했다. 꽤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장르를 너무나도 매력적이게 덕질하고 있는 덕후 두 명. 부러움에 샘이 날 만큼 자신의 덕질에 푹 빠져 있는 덕후들의 모습을 혼자서만 감상하기엔 아까워 준비했다. 훌륭한 덕질 메이트를 소개한다.


출처: 마크 테토 개인 홈페이지

 

북촌 뉴요커, 마크 테토

금융전문가, 한옥에 사는 미국인, 2018년 경복궁 명예 수문장 등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따라 나오는 키워드다. 바로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익숙한 얼굴로 기억되는 미국 대표 마크 테토다.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마크 테토의 덕질 장르는 한국 문화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가 애초부터 한국 문화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일주일에 120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해서 힘든 차, 한국에 있는 멘토가 새롭게 설립한 부서에 자신을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한국 생활 초반부터 한옥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평범한 오피스텔에서 지냈는데,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한옥을 구경했다가 한눈에 반해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 길로 바로 한옥에서 살기로 마음먹고 나니, 한옥에 어울리는 고가구와 고미술에 관심이 생겨 한국 문화에 빠졌다고. 어쩌다 보니 한국 그 자체에 ‘입덕’한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덕질을 하고 있다. 한옥 관련 동아리 ‘아름지기’의 일원이며, 다양한 문화기관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 헨리와 입찰 경쟁을 펼쳤던 자선경매에 기부한 수막새 세트 역시 자신이 직접 공수한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돋보이는 덕질의 방식은 마크 테토가 써 내려간 글이다.

 

택시기사에게 ‘P턴’을 해달라고 요청한 뒤 골목에 들어서면,

갑자기 커튼이 걷히면서 서울 사람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사는지,

진짜 서울라이프가 무엇인지 보게 된다

 

 

쓰면서 덕질합니다

‘마크 테토 인스타 글 올라올 때마다 국적 잃는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류의 댓글이다. 마크 테토는 기록하며 덕질한다.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문화적, 예술적으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쉽게 예상하지 못한 시각으로 한국을 표현하기도 한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한국은 부드럽고 사뿐하다.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장면 속의 디테일까지 잡아내어, 보이는 그대로 전달하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음에 움푹 박히는 것만 같다. 인스타그램과 홈페이지에 올라온 <서울은 골목의 도시다>가 여러 커뮤니티와 기삿거리로 돌아다녔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그의 글은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중앙일보에서 <비정상의 눈>이라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으니 마크 테토의 눈으로 본 한국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겐 최적의 ‘앓을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출처: 공식 블로그(kyurim.net)

 

문구인, 김규림

‘문구인’ 그의 SNS에 쓰인 소개 글에 빠지지 않는 단어다. 문구 회사 소개말에 적힌 이 단어에 매료되어, 스스로 문구인 선언을 한 블로그 게시글까지 있다. 본업은 마케터이지만 말이다. 회사원 김규림, 마케터 김규림보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와 연관 지어 문구인 김규림이라고 소개할 정도이니, 문구에 빠져도 엄청나게 푹 빠져 있다.

덕후이고 싶어서 덕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덕후가 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흔히들 ‘덕통사고’라고도 한다. 김규림 역시 자연스레 문구 덕후가 되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문방구로 달려갈 만큼 문구류를 넘어 문방구까지 덕질할 정도였다고 한다. 방과후 수업 듣듯이 자연스레 문구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문구인의 뿌리를 꽤 깊게 다지게 했다. 그 깊은 뿌리는 단순 좋아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여기저기로 손을 뻗어 각각의 문구들에 이름을 붙이게끔 했다. 만년필을 새로 산 날엔 끊임없이 글씨 연습을 하거나 글을 쓰게 되니 ‘당장 행동하게 만드는 문구’, 데일리 체크리스트를 사면 아침마다 꼬박꼬박 할 일을 정리해보게 되니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주는 문구’라는 명찰이 그렇다. 단순 필기도구로만 문구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검은 펜 한 자루면 충분하겠다만, 문구인 김규림은 이 세상의 문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이야기를 심어준다.

 

문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쓰거나 만드는 건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드는 일이다

 

 

이야기를 심으며 덕질합니다

그의 SNS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목요일마다 글을 쓰는 ‘목요일의 글쓰기’부터 모든 게시글에서 빠지지 않는 그림일기까지, 순간이나 상황, 물건에 부여된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다. 그는 어디를 여행 가도 ‘여행 필수 코스’에 학을 뗀다고 한다. 남들이 가보라고 하는 곳, 모두가 가는 곳보다는 자신의 취향이 있는 곳에 가고 싶어 한다. 문구인 김규림에게는 문구가 있는 곳이 필수 코스일 테다. 이는 작가 김규림의 책인 <뉴욕규림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책 곳곳에는 문구류에 관련된 영수증들이 가득하다. 그의 여행은 문구로 시작해서 문구로 끝난다. 여행을 기록하는 것마저 노트와 사인펜 아닌가. 빈 노트에 이야기를 심어주고, 책상에 놓인 문구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끼니 그에게 덕질은 이야기를 심고 수확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구 덕질을 마음에 심고 오로지 문구에 대한 열정으로 <아무튼, 문구>라는 책까지 냈으니 말이다. 어째 김규림 작가의 덕질을 보고 있자면 지금 당장이라도 덕질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다.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데에는 무언가에 미친 덕질만 한 게 없으니 말이다!

CREDIT

에디터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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