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는 고객을 포기했다

출처: 게임트릭스

 

50.13%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약칭 롤)>가 정확히 10주년을 맞은 2019년 10월 4주 차에 기록한 PC방 점유율이다.* 한국의 PC방 점유율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주로 게임을 하는 카테고리의 공간에서 무려 2명 중 1명이 출시된 지 10년째인 게임을 즐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경이로운 사실이다. 이는 지난 3년 동안 블리자드의 야심작 <오버워치>, 배틀 로얄 형식 게임의 화룡점정 <배틀그라운드>의 매서운 도전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더더욱이나 그렇다. 훗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곧 막을 내리는 2010년대를 “우리는 라이엇 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의 시대를 살았다”며 추억할 것이다.

* 게임트릭스 GT 리포트, ‘2019년 10월 4주차 주간게임동향’


 

시공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여기, <리그 오브 레전드>가 열어젖힌 AOS(Aeon of Strife) 혹은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의 시대에 게임보다 밈(Meme)으로 더 화제였던 또 다른 게임이 있다. 바로 2015년 출시된 블리자드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다. 자사 게임인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의 캐릭터를 모아 만든 게임이다. 일명 ‘블빠(블리자드 팬)’들을 비롯한 게임 팬들을 설레게 할 컨셉이었지만,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리그 오브 레전드>와 달리 시작과 함께 곧바로 고꾸라졌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 그대로 가져온 엔진, 빈곤하다 싶을 정도로 적었던 캐릭터 수*, 쾌감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연약한 타격감 등 누가 봐도 급조한 티가 팍팍 났기 때문이다.

* 초기 영웅은 스물셋뿐이었다. 2019년 10월 기준 현재 영웅 수는 87명이다.

그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좋은 쪽으로는 바리안, 라그나로스, 겐지, 한조, 알렉스트라자 같은 개성 있는 신 영웅 출시, 시쳇말로 ‘히격변’이라 불리는 2.0 선언(?)이 대표적이다. 나쁜 쪽으로는 갑작스러운 프로 대회 HGC(Heroes Global Championship) 폐지, 개발진 축소를 예로 들 수 있다. 결과는 PC방 점유율 기준, 2.0 출시 직후 3.43%, 5위를 기록한 것이 무색하게 <리그 오브 레전드> 10주년 주간과 같은 기간 평균 0.29%, 20위. 온라인 게임 장르로 따졌을 때, MOBA에서 오토 체스, 전술 FPS로 바통이 넘어가는 시기이니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수치다.

 

사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애초에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한 회사 전체를 먹여 살리고, 특정 장르를 독식할 정도로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그에 비해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자사의 여러 히트작을 한데 묶은 외전 격에 가깝다. 이러한 시장 내에서의 단적인 이미지와 앞서 언급한 수치에 비추어 보면, 결과적으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200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블리자드의 쓸쓸한 현재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출처: 블리자드 코리아 공식 페이스북

 

왕관은 이미 넘어갔다

블리자드는 그간 출시하는 게임마다 장르와 스타일을 바꿔가며 게임 장르 측면에서 유행을 선도했다. 회사의 본격적인 성장세를 일으킨 <워크래프트 II>는 전략 시뮬레이션의 영원한 클래식이다. 포인트 앤 클릭, 핵 앤 슬래시 계열의 RPG <디아블로 II>는 호러블한 분위기 등으로 여전히 장르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게임으로 남아 있다. <워크래프트 II>의 후속 시리즈 <워크래프트 III>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각각 추가 종족과 영웅 시스템, 초월적인 스케일로 확장한 세계관과 그에 부합하는 수준의 방대한 스토리, 맵, 퀘스트로 2000년대 온라인 게임계를 집어삼켰다. CCG(collectible card game), 즉 수집형 카드 게임 <하스스톤>은 <워크래프트>라는 브랜드 아래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2016년 한 해만큼은 <리그 오브 레전드>와 맞먹은 <오버워치>는 특유의 캐주얼함과 미래 지향성으로 온라인 게임 트렌드를 다시 FPS로 옮겨놨다.

이렇듯 여러 라인의 게임을 대체로 성공적으로 이끈 건 분명 어떤 회사도 쉽게 이룰 수 없는 블리자드만의 엄청난 업적이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에 따라 유저 수나 영업 이익이 전성기 시절만큼 유지되지 않음에도 보유한 모든 시리즈를 동시다발적으로 운영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2010년대에 등장한 히트 시리즈의 후속작들은 본래 매력을 상실한 채로 기존 팬들에게 실망만을 안겼다. <스타크래프트 2>는 밸런스와 속도가 주된 문제였고, <디아블로 III>는 다른 양산형 RPG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해진 분위기가 지루함을 불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10년 내놓은 세 번째 확장팩 ‘대격변’부터 북미 온라인 게임 점유율 1위 자리를 <리그 오브 레전드>에 내줬다. 출시 당시에는 시장을 뒤집어놨지만, <오버워치> 역시 역설적으로 너무 낮아서 문제인 진입 장벽, 변화하지 않는 메타, 밸런스를 깨는 신 영웅 출시에 의해 인기가 급감했다.

 

새롭게 왕좌를 차지한 라이엇 게임즈와 <리그 오브 레전드>는 그전부터 <워크래프트 3: 레인 오브 카오스>의 유즈맵으로 시작된 DOTA(Defence of the Ancients)로 분 AOS/MOBA 열풍에 조금 일찍 몸을 실었다. 확실한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블리자드는 자사 게임에서 나온 변형 장르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기 좋게 놓쳐 버렸다.* 해당 장르의 팔로워가 된 그들은 결국 뒤늦게야 조악한 완성도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내놓으며 놀림감이 되었다. 마치 마블이 몇 년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어벤져스>를 쫓다 가랑이가 찢어져 버린 DC 코믹스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저스티스 리그>를 보는 것만 같다. 영화보다 더더욱이나 안타까운 건 콘텐츠의 형태가 게임이기에 현재진행형인 서비스를 함부로 종료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자사 게임에 스스로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만큼이나 그 게임 회사의 장래가 어두움을 보여주는 시그널이 또 없기 때문이다.

*AOS(Aeon of Strife)는 본래 <스타크래프트> 유즈 맵 중 하나의 이름이었다.


 

(게임)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

반면, 꾸준한 패치, e스포츠 리그의 흥행을 비롯한 여러 인기 요소에 힘입어 또다른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리그 오브 레전드>는 이제 더욱더 높게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6일, 10주년 특별 생방송에서 한꺼번에 향후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을 바탕으로 총 다섯 개의 게임을 개발 중임을 밝힌 것이다. 라이엇 게임즈 개발진은 모바일 AOS, 격투, FPS, 카드, 쿼터뷰 액션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게임을 오랜 시간 동안 개발 중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영상에 출연한 개발자들은 한입 모아 고객 중심의 마인드를 강조했다. 그들은 지난 10년간 <리그 오브 레전드>를 더 완벽하고, 더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 아래 조급함을 내보이기보다는 플레이어라는 이름의 고객들이 자신들의 것을 더 사랑할 수 있게끔 했다. 늘 기대보다 우려가 뒤따르는 모바일 게임, 블리자드가 이미 5년 전 출시한 카드 게임을 준비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라이엇 게임즈에게 큰 기대감을 걸고 있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블리자드도 당연히 플레이어가 만족하는 운영을 해야 함을 잘 알고 있기에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건 아니다. 당장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연례행사 ‘블리즈컨(BlizzCon)’의 올해 오프닝만 봐도 그렇다. 한국 시각 기준 11월 2월과 3일 양일간 열린 2019 블리즈컨은 블리자드의 CEO 알렌 브렉이 전하는 사과의 메시지와 함께 막을 올렸다. 그가 사과를 한 실질적인 이유는 하스스톤 e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한 홍콩 국적의 블리츠청이 내뱉은 정치적 발언에 내린 징계 때문이었다. 다만, 그 이면에는 지난해 블리즈컨에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야유를 받은 디아블로의 모바일 버전 <디아블로 이모탈> 게임 그 자체, 그리고 중국에서 텐센트 다음으로 규모가 큰 <디아블로 이모탈>의 공동 제작사 넷이즈가 있다. 올해는 그 모든 사태를 만회하고자 시리즈별로 많은 것을 준비했다. 실바나스가 리치 킹의 투구를 반으로 쪼개며 시작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새로운 확장팩 ‘어둠땅’, 왠지 <디아블로 이모탈> 쇼크에서 벗어나고자 급조한 듯한 <디아블로 IV>, 이제야 겨우 요원들이 다 모인 <오버워치 2>까지, 나름 갖출 구색은 다 갖췄다.

 

그 와중에도 실세에서 밀려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2019 블리즈컨 열흘 전 신규 영웅 데스윙의 트레일러가 공개됐을 뿐,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1년 동안의 기록을 살펴봐도 단 세 번의 영웅 출시, 두 개 맵의 리마스터, 약간의 기존 영웅 리워크가 전부였다. 나머지 시리즈도 사실은 명불허전이라는 시네마틱만 번지르르하고, 구색 그 이상으로 놀라움을 안기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블리자드의 이 모든 선택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선택이 된 걸까? 오늘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라는 버려진 땅에서는 여전히 생각보다 많은 고객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고, 블리자드의 2020년대는 희망보다는 희망 고문 혹은 절망에 더 가까워졌다.

CREDIT

에디터 김정원

하늘 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다지만, 양심만 있으면 재밌는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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